0. 들어가며
벌써 7월이다. 2024년도 절반이 지났다.
3월 1일에 귀국했으니 약 4달이 지난 것인데, 지난 4달이 짧게 느껴지기도,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항상 그래왔듯이 많은 일이 있었지만, 감히 그 시간동안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길었던 고민의 끝에, 나는 또 한번의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이번 회고에서는 나의 지난 상반기가 어떠했는지, 또 어떠한 다짐을 가지고 하반기를 맞이할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1. 유종의 미
'유종의 미'를 거두자. 새 해가 밝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나의 머릿속을 지배했던 생각이었다.
미국에서의 지난 시간은 너무나 행복했지만, 동시에 1년이라는 시간적인 제약은 나를 여러가지 면에서 조급하게 만들기도 했다.
지난 2023년 회고를 적으며 나의 부족한 점에 대해 여실히 깨달았지만, 귀국까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두 달 남짓에 불과했다.
이 기간동안, 크고 작은 네 번의 여행이 있었다.
각각 가보지 못한 장소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으로,
얻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을 내려놓고자,
가장 소중한 인연들과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고자,
그리고, 지난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한 번 나아가고자 한 여행이었다.
각 여행에서 얻거나 느낀 것들을 각자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또 다른 삶에 대한 궁금증,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 삶에 대한 회의감과 신선함,
여러 가치들 속 어떤 행복을 선택할지에 대한 방향성,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확신이었다.
생각과 감정에 휩싸인 마지막 2달동안의 여행이어서인지, 모두가 나에게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일상 속에서는, 남은 시간을 '새로운 경험' 보다는 '지난 경험'을 잘 마무리하는 데에 중점적으로 사용하고자 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내가 얻은 것들에 감사하고, 내가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잘 마무리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내 미국 생활의 기반이었던 차트메트릭 동료들, 베이 러닝클럽이나 EO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만난 나에게 자극을 주는 사람들,
낯선 땅에서의 삶을 사랑과 동기부여로 채워준 이들과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하고, 내 기억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
그러던 중, 소중한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동시에 이들이 친해질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페어웰 파티를 기획했고, 정말 너무나 감사하게도 약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파티를 찾아와 나의 마지막을 함께 아쉬워 해 주었다.
너무 늦었지만, 이 순간을 함께해 준 모두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진심으로, 미국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누군가 나에게 미국에서 유종의 미를 잘 거두었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고백하건데 아쉬움이 남는다고 답하고 싶다.
어리고 조급했던 나는 부족함이 많았고, 연달아 일어난 기이한 일들과 귀국으로 인해 신경써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많이 힘들었다.
그 때의 나는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나 부끄럼은 없지만,
제대로 감사와 이별의 말을 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생각난다.
머지않아 이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너무 고마웠다고, 얼굴을 마주하고 다시 한 번 이야기하고 싶다.
2. 한국으로 돌아오다
변화에서 오는 위화감
1년 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후, 몇 주 사이에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일상에서 들리는 언어, 휴대폰에서 사용하는 앱, 먹는 음식, 거리의 풍경과 날씨까지.
하지만 나에게 무엇보다 가장 크게 다가왔던 것은 바로 '내가 처한 상황'의 변화였던 것 같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물리적 배경이 바뀜과 동시에, 직장인에서 대학생으로, 사회적 배경 역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어울리고 교류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에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 역시 달라졌다.
미국에 있을 때, 나는 어떤 모임을 나가던 가장 어린 편이었고, 사회적으로도 경험이 제일 부족한 편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나는 대학에서 가장 선배였고, 동아리 회장이나 미국 인턴 등, 상대적으로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이었다.
형 누나들에게 설익은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며 보살핌을 받던 내가,
어느 새 후배들이 따라가고 싶어하는 선배의 위치에 와 있었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해 왔던 생각이었지만, 다시 한 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뛰어난 사람은 엄청 많고 나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긴장의 끈을 놓치면 안주하게 될 것만 같았다.
나의 의견을 이야기할 때 조금 더 조심하려고 했고,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자 노력했다.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주제 역시 정말 많이 바뀌었다.
일반적으로 학생과 직장인이라는 상황의 차이에서 기인한 부분들이 많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영역이 다른 것도 사실이었다.
당연히 항상 이랬던 것도 아니고, 양 쪽 모두에서 소비되는 비슷한 대화 주제도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미국에서의 대화가 조금 더 미래에 초점을 맞춘 진취적인 대화였다면,
한국에서의 대화는 조금 더 현재에 포커스가 맞춰진, 지금의 일상에 대한 대화였던 것 같다.
대화의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나, 짧은 시간내에 이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오랜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미묘한 위화감을 느끼며, 동시에 내가 어느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할수도 있겠다는 작은 불안감이 마음 속에서 피어났다.
단단해진 고민과 개발자로서의 성장
기존에 일하던 차트메트릭에서, 내가 학교 마지막 학기와 회사 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파트타임 오퍼를 주셨다.
커리어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기에, 인턴십 마무리 발표와 협상을 거쳐 병행을 시작했다.
다행히 학교 수업을 성공적으로 화, 수요일에 몰아서 배치한 덕분에, 나머지 요일은 조금 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스위치처럼 학생 / 직장인 모드가 완전히 바뀌는 게 아니라,
컴퓨터에서 작업하던 창을 백그라운드에 감춰놓는 느낌이었다.
다른 ‘모드‘에 있을 때에도, 일정 정도 이상의 신경과 에너지는 계속 소비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시간을 학업과 일 중 언제 어떤 것에 어떻게 쏟을지에 대한 루틴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 생활에 루틴이 생기고 병행 생활에도 적응한 이후, 다시 다음 스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개발자로서 어떤 노력을 해야할지가 가장 큰 고민 포인트 중 하나였다.
내가 개인적으로 보완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코딩 테스트 공부가 가장 먼저 생각났고,
개발자로서 나의 무기를 늘려야겠다는 생각에 프론트엔드나 AI 같은 다른 분야 공부 역시 고려했다.
노드 개발자인 나에게 오랜 고민이었던, 한국에서 선호되는 백엔드 스택인 자바-스프링 역시 옵션이었다.
결국은 모두 해야 하는 것임은 분명하지만,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둘지가 중요했다.
고민 끝에 내가 선택한 것은, 이들 중 어떤 것도 아닌 오픈소스 기여였는데,
이는 ’성장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했을 때 가장 크게 이루어진다‘라는 믿음에 기반한 선택이었다.
첫 오픈소스 기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에 개발 블로그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볼 예정이다.
이와 동시에, “어떤 개발자가 더 좋은 개발자인가”와 같은, 조금 더 근본적인 고민 역시 지속했다.
내 첫 개발 멘토인 우영이형과도 이 내용을 안주삼아 취해가며 오래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우리의 결론은 '코딩은 도구이고, 개발자는 이를 활용해 우리 주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였다.
개인적으로 서비스 개발자로서 기술 발전의 선봉에 서 있지는 않다는 느낌을 종종 받은 적이 있는데,
새롭게 쏟아지는 혁신적인 기술들을 문제 해결에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고 지속가능한 삶
나는 일이나 자기계발을 좋아하고 열심히 임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재미있고 지속가능한 삶을 꿈꾼다.
언젠가 번아웃을 경험한 후 인생은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것을 몸으로 체감했고,
이 때부터 내 에너지를 지속가능하게 분배하고 사용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나는 노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새로운 것을 경험해보는 것도 매우 좋아하는데,
과거에는 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한다.
현재 내 삶의 태도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놀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 논다'라고 할 수 있겠다.
나에게 이는 매우 건전한 동기부여이자 견제로 작용해 왔고, 지치지 않고 롱런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 되었다.
운동은 일 외적인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나는 이번 상반기에 학교 수업을 통해 필라테스와 댄스스포츠를, 개인 학원을 통해 축구를 배웠다.
필라테스와 댄스스포츠는 다른 곳에서 내가 쉽게 용기내어 배우기 힘든 신선한 종목이라는 것이 선택의 이유였고,
축구의 경우 왜소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 부족으로 내가 좋아하는 만큼 잘하지 못해 한번쯤 꼭 제대로 배우고 싶었던 종목이었다.
세 가지를 통해 얻은 것은 조금씩 다르지만, 스트레스 해소와 건강한 마음과 몸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기존에 즐겨하던 러닝과 헬스는 기초 체력 유지를 위해 꾸준히 하려고 했으나, 이전만큼 자주 하지는 못했다.
러닝의 경우 학교 러닝 크루의 정규런 시간이 전공 수업 시간에 정확히 겹쳐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다행히 우연한 기회로 정규런에 한 번 참여할 수 있었고, 혼자, 또는 친구와 함께 종종 뛰며 아쉬움을 달랬다.
헬스의 경우 귀국 초 일정이 많아 불안정하고 불규칙적인 생활을 했던 탓에 꾸준히 시간을 투자하기가 어려웠다.
자연스레 약속이 줄어들고 더 노력을 쏟았고, 다행히 사라졌던 근육들이 조금씩 돌아오고 건강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외향적인 나에게, 사람을 만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했다.
1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며 근황 이야기를 나누었고,
함께 공유하지 못한 시간 동안 서로가 겪은 일들을 뒤늦게 따라잡았다.
홍기와 단둘이 떠나 속 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오사카 여행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와 동시에, 새로운 사람들도 꾸준히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학교에서는 동아리나 수업, 모임을 통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다.
내가 상대적으로 고학번이다보니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는 않았는데,
그럼에도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는 시간을 더 보내려고 노력했고, 덕분에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굳이 프로젝트’라는 신선하고 도전적인 모임에 합류하기도 했다.
이 모임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재미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가 주도적으로 모았던 4기 히말라야 조 모임과, 5기에서 참여했던 ‘함께 노래 만들기’ 활동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굳이 프로젝트에서는 미국에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현재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도전적인 활동들을 찾아 적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3. 다시, 더 넓은 세상을 꿈꾸다
미국으로 가고 싶은 이유
‘학생’이라는 안정감을 주는 타이틀이 없어진다는 것은 내가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을 시작한 후 경제적으로는 거의 독립헀지만, 졸업이 의미하는 완전한 사회적 독립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졸업 후 나의 중장기적인 목표는 다시 실리콘밸리로 가는 것이었다.
다시 미국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은 ”미국이 그렇게 좋았냐“, ”돈을 훨씬 많이 주냐“, ”그럼 미국에서 평생 살고 싶냐“ 등이었다.
미국과 한국 생활에는 확실히 장단점이 있다.
모국의 환경과 언어, 사람들이 주는 안정감은 한국의 엄청난 장점이다.
동시에, 개발자에게 미국의 일류 테크 기업이나 새롭고 혁신적인 스타트업과 함께할 수 있는 도전적인 환경 역시 매력적이다.
두 나라 모두 뚜렷한 장단점이 있었기에, ‘어떤 선택이 내 옵션을 늘리는 선택인가’라는 명확한 판단 기준을 세웠다.
이 잣대를 놓고 고민해 본 결과, ‘나는 다시 미국에 다시 가고 싶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미국에 진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꽤 존재한다.
한국에서 커리어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싶을 수도 있고,
일정 수준 이상의 커리어적 성취를 이룬 후, 개인적인 삶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을 수도 있다.
다만 이들은 실리콘밸리나 미국이라는 더 큰 세상에서 이미 자신을 증명했기에,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 경력을 인정받으며 한국으로 들어와 또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다.
물론, 미국에서의 삶을 더 지속하고 싶은 사람들도 존재한다.
미국은 개발자가 활약할 수 있는 기회가 많고 비교적 이직이 자유롭기에,
회사의 규모, 도메인, 사내 문화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해 새로운 도전을 이어나갈 수 있다.
물론 외국인의 입장에서 비자 등의 변수가 존재하나, 적어도 '시도해 볼 기회'는 존재한다.
한국에서 커리어적 성취를 쌓는다면, 국내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새로운 도전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취나 경험을 모두 인정받으며 바로 미국으로 진출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미국 기업들은 당연하게도 ’이 사람이 미국에서 일을 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는데,
미국에서 학교나 회사 경험이 없는 사람을 채용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큰 리스크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보다 뛰어난 성과를 내 이 리스크를 충분히 상쇄할 수 있어야 하는데,
미국 테크 기업들은 한국 최고의 테크 기업들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채용에는 회사 타이틀보다 개인의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냉정하게 수만장의 이력서들 중 정보가 부족한 학교나 회사가 적혀 있는 서류가 큰 주목을 끌기는 힘들다.
설명이 길었으나, 상황이나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조금 더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
‘미국에서 커리어 초반부를 보내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겠다는 판단이 섰다.
현재 일하고 있는 미국 회사인 차트메트릭에서는 졸업에 맞춰 나에게 풀타임 오퍼를 했다.
하지만 미국은 비자 관련 규정이 매우 엄격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나를 당장 미국으로 데려가기는 힘들었다.
이와 같은 여러가지 이유로, 내가 빠르게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미국 석사 과정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나의 처음 계획은 '한국에서 몇 년동안 일을 하며 일정 수준 이상의 돈을 벌고 경력을 쌓아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 이었다.
이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계획이었지만,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내가 많은 것을 내려놓고 다시 미국으로 갈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았다.
풀타임 오퍼와 리모트 근무
차트메트릭으로부터의 풀타임 오퍼는 너무 감사하고 좋은 일이었지만, 몇 가지의 고민되는 부분이 있었다.
고민의 가장 큰 이유는 회사가 미국에, 다른 시간대에 있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한국 직원들은 우리 시간대에 맞춰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크고 작은 미팅들이 이른 아침, 늦은 밤이나 새벽 시간대에 잡히는 경우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내 사수와 우리 팀, 대부분의 직원들이 미국 시간대에 있다 보니 ‘함께 일하는’ 느낌이 조금 적게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주니어 개발자의 경우 바로 옆에서, 또는 실시간으로 보고 배우고 경험하고 소통하면서 많이 성장한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시간대에서 원격으로 일하며 이러한 부분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일적인 네트워크를 더 활발히 쌓고 싶다는 니즈 역시 존재했다.
강남에 한국 오피스가 있고 그 곳에서 리모트로 근무하는 한국인 동료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팀이 미국에 있고 회사도 미국 회사이기에 제한되는 부분도 일부 있을 것 같았다.
한국을 기반으로 한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은, 사내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도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이런 부분들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민 끝에 풀타임 오퍼를 수락하기로 결정했다.
당장 차트메트릭에서 일하는 것이 만족스러웠고, 이곳에서 아직 더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꿈에 더 가까이, 밴쿠버로
위의 두 가지 주제에 대해, 혼자 생각을 정리하기도,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끝에 도달한 결론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차트메트릭 리모트 근무를 해 보자' 였다.
이 판단을 하게 된 몇 가지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캐나다는 미국과 시차가 나지 않는다.
밴쿠버는 미국 서부와 같은 시간대를 사용한다.
각종 미팅, 배포 등 업무 주요 일정이 내 근무 시간 내에 일어난다.
이 덕분에 미국에 있는 회사 동료들과 같이 일하기에 편하다.
회사 외적으로도, 미국 시간대에 열리는 웨비나 등에 참석하기도 유리하다.
2. 밴쿠버는 엔지니어 네트워크가 활발하다.
밴쿠버에는 개발자나 엔지니어들이 굉장히 많다.
작년에 여행으로 잠깐 밴쿠버를 다녀왔을 때, 좋은 기회로 '2030 Young Professionals' 그룹 모임에 나간 적이 있다.
그곳에는 아마존, MS 등 글로벌 빅테크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들이나, 스타트업 창업을 준비하는 기업가들이 가득했다.
내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 근무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더 해보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다.
이처럼 도시 전반적으로 개발자나 창업가들을 대상으로 한 모임이 활발해서, 정보를 얻고 같이 교류할만한 친구를 사귀기에 유리하다.
3. 미국 (실리콘밸리)과 물리적인 거리가 가깝다.
비행기 직항 기준, 밴쿠버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실리콘밸리에서 열리는 테크, 스타트업 관련 행사에, 노력을 통해 물리적으로는 충분히 참석이 가능하다.
또, 비약이 있을 수 있으나, 정보 획득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목표에 물리적으로 더 가까이 있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4. 비자 발급이 가능하다.
캐나다가 미국보다 비자 관련 규정이 훨씬 너그럽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통해 최초 2년동안 체류가 가능하고,
신청 시 추가적으로 2년 연장이 가능해 총 4년동안 안정적인 체류가 가능하다.
이와 같은 판단이 선 후, 매니저와 대표님께 캐나다 원격 근무가 가능한지 문의했고,
아직 세부적인 사항은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지만, 회사로부터 공식적인 승인 통보를 받았다.
가족들에게도 이 내용을 공유했고, 내심 섭섭해하시지만 내 꿈을 위한 뜻과 노력을 존중해주셨다.
다행히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 유용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고,
통상적으로 몇 달이 소요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 초대가 운이 좋게도 굉장히 빠르게 이루어졌다.
이후 빠르게 비자 발급 절차를 밟았고, 현재 추가적인 신체 검사 결과만 이상이 없으면 비자 절차가 곧 모두 완료된다.
가족들과 보낼 추석 연휴, 비자 발급 소요 시간, 밴쿠버 정착에 소요되는 시간 등을 모두 고려해 출국 일정을 확정했고,
나는 9월 18일, 다시 한국을 떠나 밴쿠버로 간다.
4. 두 번째 떠남을 준비하며
미련과 두려움
꿈과 커리어를 쫓아 밴쿠버로 가기로 결심했지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바로 한국에 대한 미련과, 다른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을 떠나 해외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는 것 같다.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사람', 그리고 '한국이 좋지만 떠나는 사람'.
나는 후자이다. 비록 한국이 여러가지 사회적, 구조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한국에서의 내 삶이 만족스러웠고, 앞으로도 이곳에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미련이 남는다.
미련의 가장 큰 이유는 언제나 그랬듯이 사람이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이 여기 한국에 있다.
1년에 한 번씩 한국으로 들어온다고 해도, 그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를 붙잡아달라고, 그런데 붙잡지 말아달라고. 미련이란 이처럼 오묘한 감정이다.
캐나다로 가겠다는 결정을 내릴 때,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낯선 장소와 문화에 대한 적응 때문이냐고? 사실 이는 크게 두렵지 않다.
내 두려움은 바로 '남들과 다른 삶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미국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고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 대화 속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1년이라는 시간동안 내가 경험한 것과, 다른 사람들이 경험한 것에는 차이가 있었다.
내가 경험한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저 다른 것을 경험한 것이다.
하지만 이 다름이 2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동안 더 누적된다면, 나는 과연 얼마나 더 달라져 있을까?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질 때, 그 간극이 너무 커지지는 않을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치는 것이 아닐까?
기우이고 막연한 불안감이겠으나, 적어도 나에게는 실존하는 감정임에 틀림 없다.
이런 미련과 두려움이 있음에도, 나는 결정을 내렸다.
아직 나는 너무 어리고, 안정보다는 또 다른 도전을 원한다.
해보지 못할 경험
결정은 이미 내려졌고, 나에게는 다시 약 2달 여의 시간이 남아 있다.
한국에서 나에게 남아있는 이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나는 나의 선택으로 놓치게 될 경험, 해보지 못할 경험을 하고자 결심했다.
이 경험은 두 가지 키워드로 말할 수 있다.
'직장인의 삶', '서울에서의 삶'.
같은 어른이지만, 대학생일 때와 직장인일 때의 삶은 사뭇 다르다고 한다.
사회적, 경제적 여유의 차이나, 정신적 성숙의 차이에서 오는 다름일 것이다.
과거 한국 기업에서의 인턴십이나 이번 상반기의 병행 때에는, 완전히 '학생' 딱지를 떼지는 못했다.
완전히 '학생' 딱지를 뗀, 사회초년생 직장인의 삶이 궁금했다. 그리고, 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기를 모두 대구에서 보내고, 인천에 위치한 대학에 진학했다.
첫 학기를 서울 친척집에서 살았고, 이후 군대를 제외한 4년 여를 인천에서 살았다.
갓 스무살 때에는 너무 어렸고, 인천에 살던 몇 년은 항상 서울에 나가는 것이 부담이었다.
온전히 '서울에서의 삶'을 살아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인의 서울에서의 삶'. 이것이 나의 다가올 2달의 주제이다.
인천에서 비교적 자주 다니며 마음에 들었던 연남동,
최근 몇 번 방문해보고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성수동.
두 동네에서 각각 3주, 4주씩 생활해보기로 했다.
연장할 수 있었던 정든 인천 자취방을 나와 두 번의 이사를 해야하지만,
익숙한 '대학생'의 삶을 연장하는 것보다, 돈과 노력을 들여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는 것이 더 가치있는 일이라 느껴졌다.
5. 마무리하며
이번에도 역시나 글이 엄청나게 길어졌다.
그만큼 겪은 일도, 고민한 일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 이번 선택이 어떤 미래로 이어질지 아직 모르지만,
이제껏 그래왔듯이 내가 선택한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떠나기 전 나에게 주어진 2달의 시간을, 소중하게 써 보려고 한다.
부디 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나에게 남은 2달의 일부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또, 내 선택이 만들어낼 앞으로의 미래를, 함께 기대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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