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며
호기롭게 시작했던 주간 회고는 7월 이후 멈춰 섰고,
부담을 줄이고자 작성하려 했던 월간 회고는 결국 세상 빛을 보지 못했다.
그 동안 겪은 수 많은 순간들을 찬찬히 뜯어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지난 2023년 한 해를 전반적으로 되돌아보는 회고 글을 작성하기로 했다.
이번 회고는 처음으로 'Good', 'Bad', 'Then'의 구성으로 시도해 보려고 한다.
이 글에서 나는 주로 실리콘 밸리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곳에 오기 전까지의 이야기는, 아래의 ICT 인턴십 합격 후기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2023.02.19 - [Rewind HYOSITIVE] - 2023 상반기 ICT 학점연계 프로젝트 인턴십 글로벌 과정 합격 후기
1. Good
1) 베이에 오다
2023년, 가장 잘 한 선택은 바로 베이에 온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 곳을 '실리콘 밸리' 대신 '베이'라고 부른다.)
학생과 사회인의 경계에 걸쳐 있는 이 시점에, 이곳에서 보낸 1년은 너무 값진 시간이었다.
인생의 다음 단계를 결정하기에 앞서, 또 하나의 우물을 깨고 나와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도 열정적이고, 진취적이고, 뛰어난 사람들이 많지만,
이 곳은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소소한 모임, 큰 파티, 운동 그룹 등 어떤 키워드를 가지고 모인 자리에서든, 배울 점이 가득했다.
배경이나 타이틀만 놓고 보면, 나와는 너무 거리가 먼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지만,
이들과 어울려 지내며 결국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들의 현재의 위치가 노력을 통해 얻어낸 성취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나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베이에서의 크고 작은 매 순간들은 내 운신의 폭을 넓혀 주었고,
막연한 꿈에 불과했던 실리콘 밸리는 내 눈 앞의 현실이 되었으며,
낯설고 생경했던 이 곳은 어느새, 내가 활약할 수 있는 나의 영역이 되어 있었다.
2) 진짜 행복을 찾아서
언제, 어디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미국에 오기 전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넌 겉으로는 되게 행복해 보이는데 속은 조금 다를 것 같아."
나는 이 말을 듣고 차마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많은 친구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 왔다.
하지만 때때로, 사람들의 나에 대한 기대나, 많은 사람들 속에서의 나의 위치 등으로 인해, 온전히 나의 행복에 집중하지 못한 때도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자유의 땅 미국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보내게 될 이번 1년은, 조금 더 나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몇 년동안의 경험을 통해 얻은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에, 어떤 방식을 취해야 할지는 명확했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졌고, 내 의견을 명확히 표현했고, 내가 행복을 느끼는 상황 속에 나 자신을 밀어 넣었다.
이 덕분에, 과거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하기도 했고,
기존에 항상 경험했던, 익숙한 결과가 아닌 다른 결과를 맞이하기도 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이나,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마주했음에도,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후련했다.
적어도, 이전과는 달리, 후회나 찝찝한 뒷맛이 남아 나를 씁쓸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내 행복만 찾으며 살 수는 없겠지만,
조금은 부담을 내려두고, 삶의 중심을 조금 더 나에게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여행에 미치다
미국에 온 이후, 정말 미친듯이 여행을 많이 다녔다.
1년이 안 되는 시간동안 미국의 큰 도시들인 시애틀, 라스베가스, 시카고, 오스틴, LA, 샌디에고를 다녀왔고,
요세미티,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과 레이크 타호, 캐나다 밴쿠버와 멕시코 칸쿤을 다녀왔다.
돌아가기 전, 한 두번의 여행을 통해 뉴욕, 워싱턴 DC, 하와이도 방문할 듯 하다.
이렇게 많은 여행을 다닌 덕에 자금난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이 여행들 덕분에 나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는 순간들은 두려움이나 피곤함을 이겨낼 정도로 즐거웠고,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친구가 되고, 각자의 삶을 공유하는 경험들은 나로 하여금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어떤 새로운 환경에 떨어지더라도, 나는 잘 적응하고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4) 새로운 사람, 새로운 경험
베이에 처음 왔을 때,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은 나와 함께 미국에 떨어진 ICT 인턴 동기들 뿐이었다.
그동안 '사람에게 의지는 하되 의존은 하지 말자'라는 신념을 가지고 인간 관계를 넓히려고 노력했고,
약 1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
미국도, 베이도, 개발도 당신들보다 잘 모르는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몸과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나를 사랑으로 채워준,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일과 삶, 나와 타인 사이의 균형을 현명하게 유지하는, 멋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나의 2023년은 이처럼 행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글을 빌려, 다시 한 번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건전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받아서일까, 나 역시 몇 가지 새로운 도전에 임했다.
클라이밍, 서핑, 스노보딩과 같은, 생각만 하고 시도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스포츠를 처음 접했다.
셋 다 한 번씩 경험만 해 본 정도이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로 나를 설레게 하기는 충분했다.
또, 한 번이라도 해 본 것과 아예 해보지 않은 것은 큰 차이이기에, 이번 경험은 다음을 위한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골든 게이트 하프 마라톤을 완주한 것 역시 크게 기억에 남는다.
러닝을 즐겨 하던 나였지만, 뚜렷한 목표를 정하고 페이스를 맞춰 연습한 것은 처음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며 얻은 끈기와 마인드셋은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인생의 레이스들에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말 제대로 된 좋은 취미 하나를 갖게 된 만큼, 앞으로도 꾸준히 달려 언젠가 풀 마라톤에도 꼭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유동적인 사람
'나의 강점을 키울 것인가, 약점을 보완할 것인가'
'나의 색을 뚜렷하게 할 것인가, 남과 잘 섞일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인가'
지난 몇 년동안,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들을 수도 없이 던졌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내가 내린 답변은 전자들이었다.
실제로 나는 어떤 집단에서 리더의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았고,
나의 생각과 의견을 숨김 없이 뚜렷하게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너무 이기적이고 고압적이지는 않은가'라는 의문이 뒤따를 때도 있었다.
이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2023년의 주효식이 내린 결론은 '뚜렷한 색을 가진 액체가 되자'였다.
자신의 개성을 잃지 않고 본연의 색깔을 가지되, 형태가 자유롭고 어디에나 스며들 수 있는, 그런 유동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강박들을 일정 부분 내려 놓기도 했고,
동시에 나와 다른 생각들과 성향을 최대한 많이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세상엔 지금의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물이 끝없이 흐르는 것과 같이, 더 넓은 세상으로 계속 흐르고 흘러 세상을 나의 빛으로 물들이고 싶다.
2. Bad
1) 말을 줄이자
매 년 하는 다짐이다. 말을 줄이자.
여러가지 경험들을 통해, 말의 무서움을 여실히 깨달았다.
맥락이 단절된 채 돌아다니는 말들은 변질되기 쉽고,
내 의도와 뜻이 곡해되어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남 탓을 할 것 없이, 나 역시 스스로 실언을 하기도 한다.
감정적이어서, 술에 취해서, 아니면 장난이 과해서, '아차'했던 실언들이 가끔 있었다.
하나의 실언이 사람을 규정하지는 않고, 다른 사람들이 내 말 하나 하나를 기억하지는 않겠지만,
말 조심을 해서 안 좋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2023년, 그 어느 때보다 말 조심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전까지 말로 인해 상처를 주고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랬고,
베이의 한인 커뮤니티가 좁고 워낙 많은 사람들이 서로 알고 지내기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나의 말로 인해 상처를 입거나 기분이 상한 모두에게 미안하고,
실수를 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갖게 해 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감히, 2024년에는 또 한 번 더 생각하고 말을 꺼내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2) 외국인들과의 교류, 영어 실력의 향상
"한국 사람들은 한국에서도 많이 만날 수 있으니까, 영어를 사용하면서 외국인들과 많이 어울려 놀아야지"
베이에 넘어오면서 했던 큰 다짐 세 가지 중 하나는 '외국인들과의 교류와 영어 실력의 향상'이었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목표는 성공보다는 실패라고 말하는게 맞는 것 같다.
외국인 친구들을 꽤나 사귀었지만, 결국 나는 주로 한국인들과 어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예 교류가 없었거나 영어가 늘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다.
회사 동료들과 항상 영어로 소통했고,
화목한 미국인 가족과 한 집에 함께 살고 있고,
헬스장, 파티, 친구의 친구 등의 경로를 통해 외국인 친구들도 꽤 사귀었다.
하지만, 한인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좋은 사람들이 나에겐 더 편했고,
자연스럽게 그들과 더 많이 어울리며 한국말로 생각하고 소통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이 때문에 여름 언저리까지는 한인들과 재밌게 놀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이 때문에 한인 커뮤니티가 활발한 사우스베이를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진지하게 고려하기도 했다.
어느 시점이 지나 이 곳 한인들과 더 가까워진 후, 마음 속 불편함은 행복감이 대체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제일 아쉬운 점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망설임 없이 이 부분을 고를 것 같다.
3) 게으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캘리포니아화'가 실제로 나에게도 일어난 것일까?
사전에 정보를 조사하고 계획을 세우던 나는 조금씩 즉흥적인 사람이 되었고,
일을 일찍일찍 처리하지 못하고 뒤늦게 부랴부랴 처리하는 일도 허다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즉흥적인 상황이 주는 재미도 확실히 느꼈고,
우선순위와 중요도를 따져 일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방법도 배웠고,
나의 지연된 생각이나 행동들이 나에게 큰 피해를 불러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솔직히, 이를 '여유'라는 이름의 'Good' 항목에 넣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머리는 여전히 부지런한데, 느려진 건 몸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 내용을 이곳에 배치했다.
'꼭 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하면 좋은 일', '당장 해야하지는 않지만, 하면 좋은 일'.
기존에는 '꼭' 하려 했고, '당장' 하려 했으나, 2023년에는 잘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사실을 알아서인지, 무언가가 잘못된 건 없음에도,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7월 이후로 멈춰 선 회고와, 잠들어있는 영어 기술 블로그가 이 대표적인 예시일 것이다.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건강하지 않지만,
'여유'라는 달콤한 말로 '게으름'을 포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는 분명히 있어 보인다.
4) 감정 조절
작년 회고에도 이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올해도, 이 부분에서의 나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힘들 땐 얼굴을 구기고 힘든 티를 팍팍 냈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좋지 않은 기분을 한껏 전파했다.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함께 견뎌준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뿐이다.
사실 이에 대해서는 크게 더 할 말이 없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변명이다.
언젠가 방황하던 나에게 친구가 말한 것 처럼, 감정이 아니라 감성을 살려야 한다.
감정을 컨트롤하고, 주변 사람에게 행복감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
3. And then
1) 경험과 받아들임
7월 이후로도 꾸준하게 회고를 작성했다면, 분명 더 많은 것들을 곱씹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시간을 휴식과 또 다른 경험에 투자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분명 있었다고 생각한다.
같은 경험이더라도,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그리고 나는 같은 경험에서, 아쉬움보다는 가치를 찾고자 한다.
2023년의 주효식은 최선을 다해 경험했고,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2024년 역시, 나는 최선을 다해 더 많은 것을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들 속에서, 더 많은 가치를 찾아내고 싶다.
2) Next Step
미국에서의 생활이 끝나가고 있다.
곧 비자는 만료되고,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이 한 챕터가 끝이 나면, 나는 이제 다음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내 다음 발자국이 어느 방향으로 찍힐지, 나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내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나는 정확히 알고 있다.
그 곳을 향해 계속 걸어가다보면,
머지 않아 다시 이 곳 실리콘 밸리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이 곳을 더 자유롭고 활발하게 뛰어다니고 싶다.
'Rewind HYOSITIVE' 카테고리의 다른 글
[Rewind 2024 - 上] 꿈에 더 가까이 (1) | 2024.07.12 |
---|---|
2023 상반기 ICT 학점연계 프로젝트 인턴십 글로벌 과정 합격 후기 (16) | 2023.02.19 |
[Rewind 2022 - 下]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0) | 2023.01.01 |
[Rewind 2022 - 上]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으로 (2) | 2022.08.11 |
[WE SOPT 회고] 열정 안에서 열정을 불태우다 - (2) 극락 세미나와 초보 개발자로의 성장 (2) | 2022.02.17 |